어느 로마귀족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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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로마귀족의 죽음”
안디바와 누가의 편지: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 요한계시록 2장
서론:
이 책은 역사적으로 인정될 수 있는 자료와 저자의 추측, 그리고 전적인 허구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소설이자 초대 기독교 안내서라 할 수 있겠다. 저자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실제로 있었던 일은 아닐지라도 있을 수 있는 일, 즉 사실적이며 역사적 배경에 충실한 이 책은, 읽는 내내 독자로 하여금 다음내용을 궁금하게하는 소설이라는 장르가 가진 매력과 초대교회시대의 모습을 독자가 머리속에 그리며 읽게하는 묘사가 뛰어났다. 이 책은 저자와 편집자의 서문, 등장인물, 지도 그리고 전반적으로 책을 구성하고 있는 편지들 순서로 구성되어 있다. 의도치않게 단지 책의 제목과 주어진 과제에서 염두해야 할 부분들을 보면서 로마시대의 어느 귀족의 죽음, 그리고 그의 죽음이 로마제국의 역사, 문화, 사회와 관계가 있으며 또 그의 죽음을 통하여 그가 속했던 세계 안에서 소수의 기독교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 저자가 이 책을 통하여 보여주고자 하는 모습들이 있겠음을 대략 상상하며 책을 읽기시작했다.
줄거리와 개인적인 그낌:
이 소설은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라는 요한계시록 2장 말씀을 토대로 하고 있다. 처음에는 두명의 주요인물인 안디바와 누가가 편지를 주고 받는 내용이 흥미로웠지만 어쩔수없는 허구라는 생각또한 지울수없었기에 소설 그 이상의 기대는 없이 책의 서두를 읽어 나갔음을 기억한다. 서두의 두 주요인물이 주고받는 편지의 내용, 즉 1세기 로마제국 안에서 로마의 귀족과 기독교인이 편지를 주고 받는 내용이 왠지 서로의 관계를 불화되게하고 위태롭게 만들게 되지는 않을까 생각하게 하며 독자로하여금 안절부절 못하게하였다. 독자가 염려하는 로마귀족과 초대교회 기독교인은 잘 어울리지 못했을것이라는 자연스러운 가정을 책의 저자는 염두하고 두 주요인물의 관계가 점차적으로 발전되는 장치를 책의 흐름속에서 곳곳에 치밀하게 장치해 놓았음을 알 수 있었다. 안디바가 루피누스와 함께 누가의 글을 토론 하면서, 누가가 긴급히 안토니우스의 집에서 모이는 그리스도인들을 반드시 찾아가라 조언하면서, 그리고 안디바 스스로 칼란디온의 집에서 보고들은 예수의 초자연적인 능력에만 관심을 보이는 그들의 모임과 안토니우스의 집에서 모이는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이 다르다는 것을 깨닭게 되면서 조금씩 안디바와 누가의 편지들 속에서 그 두사람의 연대가 형성됨이 보이기 시작한다. 안디바와 루피누스의 첫번째 토론 결과를 안디바가 요약하면서 어떻게 안토니우스의 집에서 모이는 25명 내외의 단체는 칼란디온네 모임 사람들과는 판이하게 달랐으며, 그 다양한 구성원들의 명예와 지위에 따른 사회적 관례를 전혀 무시한 모습들이 인상적이었는지 기술했다. 특히 그들이 예수의 기적뿐 아니라 예수가 이야기한 근본적인 삶의 방식에도 온전히 집중하는 모습이 여타의 종교 모임과 하등 다를 바가 없었던 칼란디온네 모임과는 다르며 그들의 모임의 공동체 정신은 정말 흥미롭고 독특했음을 그의 서신에 기록한다.
안토니우스네 모임에 처음 참여한 안디바는 예전 자신의 땅 일부를 부치던 소작농 이었던 시몬을 만나고 시몬에게 베풀어진 안토니우스의 선행에 놀라워하며 부적절하고 무책임하며 수치스럽다고 본인이 생각하는 것들이 정말 그러한가 라는 혼란을 갖기 시작한다 (Longenecker
2003, 174). 이 책을 읽는 독자로서 안디바의 마음에 조금씩 변화가 생기는 부분들을 찾아보는 것은 하나의 즐거운 일이었다. 처음으로 안디바가 로마의 황제에게 영광을 돌리거나 다른신의 이름으로 편지를 끝마치지 않고 (Longenecker
2003, 148), 누가에게 축복을 빌고 (Longenecker
2003, 192), 안디바가 안디옥에서 보낸 첫번째 편지에 이르러서는 기독교인이 믿는 신에게 기도한다는 끝인사를 하는 것을 보며 (Longenecker 2003, 245) 안디바가 조금씩 로마의 한 귀족으로서의 삶에서 기독교인의 삶으로 변하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반면 서신을 주고받던 초반에 안디바와 토론했던 루피누스가 누가의 글의 논점을 불편해 했다는 내용이 독자로 하여금 책의 후반부에 루피누스가 안디바의 끔찍한 죽음에 슬픈기색없이 정의가 실현되었다는 득의의 표정을 짖게됨을 복선으로 알게한다.
제목에서부터 스포일러가 있었듯이 안토니우스가 누가에게 로마귀족 안디바의 죽음을 전하는 편지를 마지막으로 책은 끝이난다. 책의 초반, 중반을 지나 결말이 다가올때 까지도 그저 로마의귀족이 이렇게 멋있고 개인적으로 알고싶을정도의 인격을 갖은 사람이었을까 생각이 드는 호감가는 인물로만 생각했던 안디바의 죽음을 읽었을때는 마치 실제로 알고있던 사람에게 나쁜일이 생겼다는 소식을 들었을때와 같은 슬픔이 느껴졌다. 게다가 그의 죽음이 석공 데메트리우스를 대속한 죽음이었으며 로마황제 도미티아누스의 앞에 홀로서서 담대한 자신의 죄의 고백과 이스라엘 하나님을 향한 신앙고백 그리고 예수를 주님으로 인정하는 고백과 함께한 죽음이었기에 어느정도 예상하고 있었던 단지 소설의 결말임에도 불구하고 같은 기독교인으로서 숙연한 마음과 형제의 죽음의 슬픔 그리고 핍박을 향한 도전을 느꼈다.
책을 다 읽고 주요인물의 죽음 그리고 책을 보는 내내 자연스럽게 저자가 제공했던 1세기 로마제국의 역사, 문화, 사회 관련 정보들을 머리속으로 그려보게 되었다. 안디바가 누가에게 왜 그토록 많은 유대인들이 로마를 원수로 여기는지 반문하고 (Longenecker
2003, 79), 본인의 이름이 헤롯대왕의 아들 헤롯 안디바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것인지 명예롭게 말하는 장면 (Longenecker
2003, 98), 비천하게 여겨졌던 나사렛을 묘사하며 갈릴리 바다와 지중해 연안 중간쯤에 위치한 그곳이 주변의 대도시들에 비하면 사는 게 형편없이 작고 초라하며 그런 촌동네에 살면서 무엇을 할 수 있었겠는가 예수의 족보를 묻는 장면 (Longenecker 2003,
96), 더하여 포장도로, 공중목욕탕, 원형경기장 같은 문명의 혜택을 시민들에게 베풀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로마귀족 자신들임을 강조하며 자신들은 자신들을 미워하는 자들에게 선을 행하고 궁핍한 자들에게 자비를 베풀고 있다고 말하는 안디바의 모습 (Longenecker
2003, 120) 속에서 그 시대 로마인의 자존감과 긍지가 로마시대 역사의 한 부분 이었음을 찾아 볼 수 있었다.
또한 책 서두에서 중반까지의 편지내용 곳곳에 등장하는 버가모의 원형경기장과 검투사를 보며 열광하는 시민들, 황제를 형상화한 대리석상 그리고 성대한 의식과 연회를 즐기는 지역 명사들, 특히 “버가모 검투사 대회 보고서” 안에 서술된 로마의 전통 신들과 황제에게 바치는 희생제와 생사의 혈투에 내던져지는 검투사들과 짐승들의 잔인한 죽음 등의 내용을 기쁘고 자랑스럽게 전달하는 안디바의 모습속에서 1세기 로마 사회가 얼마나 열정적으로 쾌락을 추구했으며 그것이 드넓은 세상의 지배자 혹은 세련된 문화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표현하고자 하는 한 방식의 그들만의 문화적 역사적 표현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더하여 편지 곳곳에서 보이는 귀족들을 높이는 장면들과 황제에게 보이는 충성심, 그리고 높은 지위의 귀족들이 필요한 자들에게 호의를 베풀고 있으며 호의를 받은 사람은 그에 응답할 것에 대한 기대를 비추는 장면들을 보며 암묵적으로 행하여 지는, 또는 행하여 지길 원하는 그 시대의 후원과 호혜성의 문화를 찾아볼 수 있었다. 필요한 자들의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수단을 베풀며 그에 대한 응답으로 영예를 갖기 원하는 귀족들의 모습과 그런 문화 속에 깊이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귀족 안디바의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문화를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저자의 글 속에서 결국 가장 와닿았던 부분은 이 책의 주인공인 로마귀족 안디바가 초대교회 공동체의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나라의 모습을 꿈꾸게 된다는 반전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안토니우스 모임에 세번째 참석하게된 안디바가 해본 적 없었던 다른 사람들의 시중을 들며 생각만큼 수치스럽지는 않았다는 고백을 하고, 그리고 나아가 다른 이들의 필요를 채우는 일에서도 나름의 역할을 하기로 동의하는 장면을 (Longenecker 2003, 180-181) 읽으며 이런 안디바의 행동이 그 사회에 기독교인들이 하고자 했던 변함의 시작임을 알 수 있었다.
소작농이었던 시몬의 증언과 안디바 본인의 연구를 더하여 작성한 “소작농의 관점에서 본 갈릴리인의 삶 (Longenecker 2003, 198)” 은 그 시대의 갈릴리인의 삶과 사회적 배경을 잘 표현하고 있으며 비교적으로 안디바에게서 보이는 변함의 시작이 그 시대의 사회에 얼마나 위험한 변화인지 잘 보여주는 부분이다. 안정적인 계층이었던 안디바가 불안정한 계층인 시몬과 우정을 쌓고, 그들 스스로를 신의 은총을 입은 자들이라 주장하는 상류층과 지배계층 및 그들의 고위직 측근에 속했던 안디바가 석공 데메트리우스의 사정을 걱정하고, 소작농이었던 시몬의 건강을 위해 기도하고 결국은 그리스도인들의 무덤 곁에 죽은 시몬의 장사를 지내 주는 모습을 통해 안디바가 그 시대 사회와의 갈등을 시작하였음을 보여준다. 특히 마지막 편지에 나와있는 안디바의 대속의 죽음장면을 통해서 로마시대 안에서 혈통적으로 생득적으로의 정체성을 갖고있던 안디바가 더이상 그 정체성을 유지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정의 한 믿음의 권속 안에서 새롭게 가족이라는 정체성 속으로 들어온 것이 그를 그의 마지막 선택에 이르게 하였다는것을 알 수 있었다.
책을 읽고:
이 글의 서두에 언급한것과 같이 1세기 로마시대에서 기독교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어떤 것인가에 대하여 이 책이 보여주는 모습들은 무엇인가 생각하면서 우리가 잘 알고있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혹시 그냥 가정은 아닐까? 안디바와 안토니오 뿐 아니라 예수를 만났던 로마 백부장은 삶은 어떠했을까? 와 같이 신약을 낯선 문서로 다시 살펴보게 되었다. 이런 세계 안에서 기독교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어떤 것인가에 대하여 이 책이 보여주는 모습들의 궁극적인 이유 또한 독자들로 하여금 그 시대의 역사, 문화, 사회를 이해할때 신약을 더 새롭고 넓은 관점에서 이해하고 읽을 수 있게 하기위함이란 생각이 든다. 책을 그 시대에 맞는 등장인물들의 표현으로 반영한 점, 로마귀족과 기독교인의 오고 가는 편지를 통해 바라보게 한점, 저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글의 요지를 어렵지 않게 표현한점에 이 책에 박수를 보내게된다. 반면 그 두 사람의 질문과 답변안에 포함되지 않은 그 시대의 교회들의 모습, 그리고 연속, 단절, 또는 완성을 생각하며 기독교인들이 재 정의 했었어야만 했을 이스라엘의 신앙유산과 그들이 살아가는 시공간 속에서 기독교인이 속한 곳은 어디였을까에 대하여 편지를 벗어난 범위로 깊이 들어가 볼 수 없었던 점이 아쉬웠다. 또한 아마도 그 시대의 기독교인들이 겪어야 했을 신앙유산에 포함된 종교행위에 대한 혼란에 관한 예를 볼 수 없었음 또한 이 책의 아쉬운 부분이었다.
이 책에서 보여지는 기독교인들의 태도, 로마인들의 반응을 초기 기독교인들과 로마인들이 명예와 수치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그리스도인의 명예와 수치의 개념이 로마인들의 개념과는 반대된다는 것이다. 사회의 명예와 반대되는 수치를 추구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에게는 명예가 될 수 있음을 그리고 사회적 범주의 시선에 따라 기독교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책이 보여주는 관점에서 볼 수 있었다. 초기 기독교인들이 주류사회에 대항하여 그들이 추구하는 명예를 지켜내기 위해서 더욱 그리스도의 영광과 은혜를 바랄 수 밖에 없었던 것처럼 우리 기독교인들은 그리스도가 가르치시는 명예와 현대사회에서 추구하는 명예를 혼동해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금 고민하게 되고,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간절히 구할 수 밖게 없음을 고백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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